[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완전함을 향한 우리의 시선

완전한 항해





 

 안녕하세요, 당신. 빙구에요!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유일하게 거울을 만들고, 또 볼 수 있는 존재라고들 하지요. 혹자는 거울을 인간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기도 하구요. 인간만이 거울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좌우가 바뀐 상일지언정, 거울에 비친 상이 이 세계에 속한 자아의 모습임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죠. 당신은 어떤지요. 자주 거울을 보나요? 거울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젊거나 늙은, 크거나 작은,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 때로 낯설지는 않은가요? 거울 안의 자신의 모습은, 때로는 너무나도 당연하면서 때로는 너무나도 잔인한 진실이죠.

 

 

 세상을 살아가면서 처음부터 마음에 꼭 드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에요. 누구나 거울 속 자신이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테지요.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몸매, 머리 등등 자아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만일, 마치 성형을 하듯 우리 자아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요? 모자란 부분을 메꾸고 부족한 부분을 버리고, 그렇게 자아를 바꾸어가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영원히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행복할까요?

 

 

오늘은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뻗어나온 윤이형 작가의 한 SF소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윤이형 작가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자면, 꾸준히 과학소설을 발표하면서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법칙까지 모두 치밀하게 제시하는 가운데 인물들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작품 속에서 줄곧 드러내왔던 작가랍니다. 과학적 세계관의 탄탄한 완성도는 물론이고, 밀도 있는 플롯과 구성 또한 돋보이는데요. 그동안 한국순수문학계에서 도외시되었던 SF분야에서는 드물게 200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이름을 올리면서 주목받기도 했지요. 완전성에 대한 담론을 SF적 세계관 위에 굳건히 구축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 <완전한 항해>를 만나보아요.

 

 

 

튜닝 : 자아를 성형하다

 

 

 

 이 소설 <완전한 항해>, 양자역학적 평행우주론을 바탕으로 다원우주에 존재하는 동일 자아의 유전형질을 교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다른 우주들의 자아를 지우고 그로부터 재능과 잠재력을 흡수하여 모든 것을 이룬 창연과, 살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 통보받은 창연의 또다른 동일자아, 희귀종족의 일원인 창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되지요.

 

 

 

창연은 마치 튜닝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각각의 에디션이 가지고 있었을 성격적 · 정신적 결함들은 창연과 조우하면서 마치 부끄러워 앞에 나설 수 없다고 판단하기라도 한 듯 수많은 장점들 뒤로 숨어버렸다. 창연 자신도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창연의 삶이 완벽하다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완전할 수는 없다고 했고, 운명의 질투 때문에 그녀가 요절할까 두렵다고 몇 번이나 애정 어린 걱정을 쏟기도 했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창연은 만족하지 못했다. 창연의 삶은 거대하고 풍성했다. 즐거웠지만 피곤했고, 피곤하면서도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벌써 쉰이었는데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았다. 미지의 가능성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창연은 시간의 속도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

창연은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은하에 아무리 많은 갈래 세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이 아닌 자신의 또다른 자아라니. 게다가 엄지손톱보다 작고, 엄청나게 빠른 괴물 비행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돌연변이 종족이라니.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칭송받는 창연은 쉰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생일선물로 쉰 번째 자아의 튜닝을 원합니다. 이 세계의 튜닝이란, 각기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동일한 자아형의 존재들을 흡수하여 자아를 개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쌍꺼풀 수술을 하고 콧대를 세우는 것처럼 자아를 성형하는 거에요. 또다른 튜닝으로 새롭게 거듭날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던 창연에게, 튜닝을 의뢰받은 에이전시는 뜻밖의 이야기들을 전달합니다. 이전의 마흔 아홉 번의 자아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희귀종족의 일원 이 그녀의 쉰 번째 에디션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를 흡수하는 것이 그녀에겐 상당히 위험한 도박이 될지도 모른다고요. 예상 밖의 상황에 창연은 당혹스러워합니다.

 

 

 

몇 초밖에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창은 루의 겹눈 너머로 저희들끼리 제멋대로 뒤섞이며 부딪치는 세계의 파편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여느 때처럼 아주 빠르게 부서져내렸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조금도 아름답지 않았다. (……)

루의 겹눈에 비친 세계는 조그만 육각형이었다. 모서리를 서로 맞댄 채 한없이 이어져 있는 작은 육각형들의 연속체. 그나마 그 형체들을 구분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 느리게 날 수 있을 때뿐이었다. 속도를 높이면 세계는 굉음을 내며 먼지보다 작은 입자들로 부서져 내렸다. (……) 넌 너무 빨라, . 하노는 자주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 그렇게 빨리 날면서 네가 보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해? 천만에, 그건 속도가 만들어낸 허상이야.

 

 

 

 뒤이어 등장하는 창연의 동일자아 '창'을 소개하기에 앞서, 창이 속한 종족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네요. 창이 속해있는 종족의 이름은 루족입니다. 한때 그들만의 동굴에서 영생을 영위하며 살았던 그들은 운명을 배반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고, 그전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인간들의 거대한 도시에서 연명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과거를 연결짓는 것은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유기체 비행선, 루뿐이지요. 거대한 눈송이와 빗방울, 어린아이의 손과 벌레 같은 것들이 날마다 그들 종족의 생명을 위협하고, 그들의 개체수는 나날이 줄어들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그다지 멀리 있는 일이 아닙니다.

 

 

 창은 튜닝 에이전시의 세일러로부터 자신의 죽음이 일주일 후에 예정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불어 튜닝을 통해 보다 완전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제안받지요. 창은 그들 종족의 독특한 비행선인 를 타고 도시의 창공을 선회하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겹눈으로 되어 있는 루의 차창 속에서 세상의 모든 풍경들이 육각형의 입자로 산산이 부서져내리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삶이 빠르게 소모되어 갑니다. 창의 삶이 루의 빠른 속도만큼이나 위태롭고 파편화되어있듯, 부서지는 세상의 풍경은 그녀에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의 길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이고, 동시에 마흔 아홉 명의 에디션들이 군말없이 창연의 자아에 흡수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루의 겹눈에 투영되는 세상의 풍경처럼 그녀의 삶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것. 그녀가 보는 것들은 속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 뿐이며, 자신의 삶도 그처럼 한순간에 시들게 되리라는 것.

 

 

 

우주로부터 일방적으로 내던져진 삶

 

 

 

여섯 개의 모서리를 지닌 파도가 루를 덮칠 듯 아주 가까이에서 일렁였다. 크고, 알 수 없는, 것들. 창의 두려움 사이로 적대감인지 오기인지 모를 희미하고 가느다란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하노라면 더 가까이 다가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창은 한계라고 생각되는 순간 루를 믿어 수직 상승시킨 다음 하늘 높이 올라갔다. 달 쪽을 향하자 수백 개의 어슴푸레한 은빛 조각들이 루의 망막에 맺혔다. ‘더 빨리.’ 창은 점점 빨라지는 날갯짓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해 루를 믿었다. 너무 빠르게 날면 온몸이 산산조각 나 죽게 될 거라고 하노는 말했다. 하지만 창은 아직 달처럼 먼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달은 창이 아무리 열심히 날아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둥근 덩어리였다. (……) 하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동안에도 달과 별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창은 생각했다. 내가 빨리 난다면. 더 빨리 난다면.

 

 

 

 일주일의 시간만을 선고받은 창은 고민합니다. 동굴 안에서 몇 번이고 생명을 되돌려주던 루의 전설은 이제 옛날이야기이고, 한둘씩 죽어가는 동료들을 그녀는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은 그녀 앞에 와 있지요. 문자가 없는 그들에겐 그들 하나하나의 삶이 스러져가는 책이며 상실된 역사입니다. 영원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찰나의 삶이, 우주로부터 그들이 허락받은 유일한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을 절망스럽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늘을 꿈꿉니다. 비록 문자로는 옮길 수 없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 다른 어떤 문자로도 옮길 수 없는 기쁨과 희열과 삶의 찬란한 순간을 그녀는 오롯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루를 타던 순간, 허공을 가르며 궤적이 그려지는 모습을 처음 보던 때를. 그것은 그녀가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우주의 그 어느 누구도, 제아무리 부유하고 완벽하다 칭송받는 창연이라도.

 

 

 

만약 세일러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고 다른 세계, 여기보다 근사한 세계로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끝나지 않고 더 완전하게 이어지는 삶이 어딘가에 있다면- 글쎄, 지금까지는 자신만큼 완전한 다른 에디션이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조금 망설일 것 같긴 했다.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이긴 했지만, 어쩐지 자신의 남편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을 아끼고 좋아해주는 다른 사람들을 배신하는 일 같았다. 내가 이 세계에 남아 죽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창연은 문득 궁금해졌다.

 

 

 

 한편, 세일러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창연 역시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그녀는 튜닝을 통해 자신에 흡수된 사람들의 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에디션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장점들을 드러내며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그들 생에의 염증과 보다 완벽한 다른 생에의 갈망이 깊었음을 반증해줍니다. 창연이 비록 태생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물려받은 부와 첨단을 달리는 과학기술을 결합하여 자아를 튜닝하면서 삶의 지도를 끊임없이 변경해 나갔으니까요. 한국에서 여섯 번째, 아시아에서 열일곱 번째로 큰 부를 거머쥐고 손대는 어떤 사업마다 성공을 거두며 각 분야에서 아낌없는 찬사를 사는 그녀. 지도 속에서 그녀의 영토는 방대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도 그녀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창연은 자신이 갖지 못한 아주 작은 영토에도 욕심이 생깁니다. 청춘을 싱겁고 미지근하게 보낸 그녀에겐 창의 통통 튀는 젊음과 열정이 무척이나 탐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 그녀를 잘 들여다보면, 갖지 못한 영역들에 대한 그녀의 욕망이 그녀가 그간 흡수해 온 다른 자아들의 갈망과 무척이나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완전을 향해 나아가도, 자신의 뜨락을 넓히고 경계선을 뒤로 물려도, 짧은 생 안에서 그녀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 거울 속에서 바뀌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녀이면서 동시에 그녀가 아닙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그녀 자신의 모습에선 어느덧 원래의 창연, ‘창연이라는 이름 자체로 완전했던 하나의 자아는 마흔 아홉 개의 콜라주된 자아들 속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창이라면, 녹차라떼가 아니라 체리 향이 든 탄산음료를 마시자고 할지도 몰랐다. 아주 낯선 것을 해보라고 말을 걸어올 수도 있었다. 창연의 하루를 뒤흔들고 미친 듯 웃거나 혼이 빠져나갈 것처럼 울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자신 안으로 들어온다면, 새롭게 알아야 할 것들과 배워서 자신의 것들로 만들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찾아오던, 위장이 짓눌리는 듯한 그 기분을 잠시 잊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절벽 끝으로 몰아내는 것 같은 다급함,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여전히 부족한 인간일 거라는 강박에서 아주 잠깐 해방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상태는 면적을 끊임없이 넓혀 가는 부채꼴과 비슷합니다. 그녀가 아무리 원의 반지름을 늘려 가며 넓은 면적으로 나아가도 원 속에서 그녀가 취하는 각도는 그대로이며, 부채꼴이 커지는 만큼 그녀가 갖지 못하는 나머지 원의 면적 역시 커질 뿐입니다. 그를 부정하려고 무던히 애써 왔으나 점점 그 강박에 종속되고 휘둘리는 그녀. 어쩌면 처음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르지요.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결국 아무리 발버둥쳐도 저 우주의 무한성과 영원성에는 미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녀 역시 창과 다르지 않게, 다른 누구와도 다르지 않게 우주로부터 내던져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 세계가 바라보는 나



 

 가까이에서 바라본 눈송이들은 무수한 육각형 결정들의 통합체였다루의 작고 수많은 겹눈들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모양이었다루의 날개를 적셔 창을 아래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지만그것들 역시 녹아버리는 연약한 결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창이 생각하는 것처럼 눈이 달에서 떨어져나온 알갱이라면달처럼 거대하고 멀리 있는 존재 역시 닿을 수 없을 만큼 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창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본 적도온전히 이해해본 적도 없었다그러나 창은 자신이그리고 자신과 한몸이 된 루가 사방에서 덮쳐 오는 거대한 얼음조각들을 피해 날아갈 수 있을 만큼은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세계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그 세계에는 루가 없었다.


 

 

 결국 창은 다른 자아에 흡수되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튜닝시스템의 예상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항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튜닝시스템이 그녀가 눈에 파묻혀 동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창공을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로 날아오릅니.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온전하게 부서지지요. 자신이 사랑했던 세계의 모습처럼. 그럼으로써 창은, 창연과 튜닝 시스템이 아마 결코 가닿지 못할, 그들이 수렴할 수조차 없을 완전성에 도달합니다.  

 

 

 우리는 늘 스스로의 한계에 좌절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원망하며 전혀 다른 세계와 자아를 그리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스스로에게 남아있는 것들에서 변모의 가능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창이 루 안에서 보는 파편화된 세계가 자신의 세계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창을 둘러싼 온 우주 역시 거울을 들여다보듯 같은 시선으로 창을 바라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우리는 깨닫습니다. 온 우주를 비틀고 뒤집을 수 있는 것은 나의 변화에 있음을요. 그렇게 해서 우주와 마주하던 시선은 곡선의 궤도를 돌아 다시 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고,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를 가로막은 한계와, 그 한계가 함축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자신이 아니라 세계와 우주 전체를 비틀 만한 질문들을 말이죠.


 


 당신이 지금 거울을 들여다본다면, 거울 너머 있는 자신의 시선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선명하고 온전하게 자신의 것임을 느껴보길 바랄게요. 그것이 당신 자신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세계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임을 알 수 있나요? 그리고 이 모든 말들이 거기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나요? 이 글자들이 제가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면서 당신이 제게 건네는 이야기라는 걸 말이에요.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당신 그 자체로서 온전하길. 

 좋은 하루 되어요.


 

 

은하 속 수많은 갈래 세계들 가운데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한 작은 갈래 세계에서, 2월의 어느 수요일 밤 열시 사십일 분루족 비행사 창의 삶은 예정대로 끝났다그러나 시스템이 예언한 것처럼 그녀가 눈에 파묻혀 죽은 것은 아니었다창의 루는 쏟아지는 눈송이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속도를 높여 계속 날아올랐고대기권을 벗어나면서 새빨간 불꽃으로 변해 타올랐다.

루족에게 문자가 있어 의미를 기록할 수 있었다면그들은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을지도 모른다루족 역사상 달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그리고 가장 멀리가장 빠르게 날았던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