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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외로움에 관하여, 그 우주적 은유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안녕하세요, 당신. 빙구에요!
빙구는 우주를 참 좋아해요. 그래서 즐거운 일이 있었던 날이나, 꿀꿀하고 우울한 날이면 침대에 누워 우주를 상상해보곤 한답니다. 광막한 공간이나 별들이 가지는 열기나 냉기같은 것, 그 상상할 수도 없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와 중력과 표정없이 궤도를 도는 행성들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 속의 지구와 그 지구 속의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당신도 가끔 우주를 생각하나요?
우리 은하에 있는 별들은 약 천억 개 정도라고 해요. 그리고 그 은하들이 이 우주에 약 천억 개 정도씩 있다고 하구요. 생각해보세요. 천억 개 곱하기 천억 개 분의 일이 지구라는 걸. 그 위의 육칠십 억 명의 사람들 중 하나인 저와 당신. 영원한 우주에 비하면 백년도 안 되는 초라한 이 인생과, 그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에서 아름답지 않은 우리. 우리의 존재는 그저 우주의 귀퉁이 어딘가를 스쳐가는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주를 꿈꾸며 살아가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죠. 평생 닿지 못할 빛을 그리워하는 거니까요. 그건 어쩌면 아주 외로운 일일지도 몰라요.
오늘 가져온 이야기는 그런 외로움이 엿보이는, 아주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소설입니다. 한때는 잘나갔으나 이제는 계약직으로 떨어진 한 세일즈맨의 팍팍한 삶을 우주적 스케일로 옮겨 놓은 한편의 풍자극, 박민규의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랍니다.
팍팍한 지구의 삶
이야기에 앞서 잠시 소개를 하자면, 이 소설은 2010년 제 3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박민규 작가가 자선대표작으로 직접 선정했던 작품이랍니다. 덕분에 한국소설문학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표지를 아주 발칙하게 장식한 바 있지요. 그래서인지 늘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문단의 권위를 곧잘 희롱하곤 했던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는데요. 특유의 유머감각과 재기발랄한 필치로 무장된 가운데, 우리네 현실에 대한 주제의식이 날선 씁쓸함으로 독자를 찔러옵니다. 진정한 코미디는 언제나 짙은 페이소스(pathos, 비애감, 동정과 연민의 감정, 애상감)을 수반한다고 했던가요. 주인공의 우스꽝스러운 인생이 마냥 즐겁지만 않은 것은,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해왔고 마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부딪칠, 비루한 삶의 한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찬밥처럼 팍팍하기만 합니다. 하긴, 우주며 별이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에겐 차 한대 안 팔아주는 돌덩어리들일 뿐입니다. 한때 잘나갔던 자동차 세일즈맨이었던 그는 최근 몇년간 가파른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32평 아파트를 사기 직전에서 22평 전세로, 방 두칸 연립으로, 연립 월세로, 계약직으로..... 이제는 새파란 후배들이 있는 대리점에 그가 들어가든 말든 갑근세고지서만큼도 환영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차보다 차팔이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이제 그냥 찌끄레기가 된 거지요. 과학이 발전함의 따라 지구의 위상이 우주의 중심에서부터, 그저 천억 개 곱하기 천억 개 중 하나인, 스스로 빛조차 낼 수 없는 행성으로 전락한 것처럼요. 밥한끼 혼자 해결할 돈도 없었던 그는, 다들 점심먹으러 나간 사무실에서 주린 배를 잡고 홀로 잡지나 뒤적이다가, 한시간이 넘게 걸려 터덜터덜 집구석까지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내가 건네는 한마디를 듣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고 말지요. 과부하가 걸린 그의 손에서 전자렌지며 TV며 집안의 가전들이 베란다를 지나 집밖으로 다이빙을 하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발견하고야 맙니다. 그것을요. 불시에, 하필 그 소란스러운 통에 '그것'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야 만 겁니다. 소설 속 모든 해프닝의 씨앗이.
뭔가 더, 던지고 부술 것이 필요했다. 뭐 없나? 경대며 장롱의 서랍까지 와르르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라잇~ 하는데 툭, 뭔가가 떨어졌다. 뭐야 좆같이... 하고 보는데 과연 좆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당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딜도였다.
집을 나와 천하장사 소세지나 뜯으면서 그는 충격적인 그것의 비주얼에 대하여 회상합니다. '내 거보다 세 배... 굵직하고 거무틱틱한 그 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고...
참... 뭐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게 다 뭣같아 보입니다. 심지어는 그가 막 껍질을 깐 천하장사 소세지의 모양새조차 그를 놀리는 것 같고 말입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싸구려 소세지를 씹으며 개판인 세상, 실적을 빼앗아간 동료들에 대한 욕설까지 함께 잘근잘근 씹다가 그는 그렇게 하루를 뒤로 하고 쓸쓸히 찜질방으로 흘러듭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풍경을. 소세지를 까먹고 사우나에 축 드러누운 그의 실루엣,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 동시에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을 얼마나 쓸쓸하고 외롭고 고립된 사람으로 만드는지요.
그때, 그는 뜻밖에도 먼저 하향의 길에 접어든 다른 동료를 그곳에서 마주칩니다.
우주, 그 역시 팍팍한
원래 그런 놈들이 성공하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자네도 내 실적을 가로채지 않았나?
앙?
자넨 잊었나 모르겠는데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네.
(...)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겐가? 거참 서운하구만.
그땐 못했지. 자네가 무서워서.
앙? 그건 또 뭔 소린가
몰라 묻나? 영업소에서 자네 별명이 미친 문트였잖나.
(...)
어떤 건인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와 조두출이를 동급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실적이란 게 그렇다. 그건 마치 정성껏 만 김밥을 자르고, 접시 위에 보기좋게 올리는 일과 같은 것이다. 내가 빼먹은 게 있다면 그런 거다. 김밥을 자르고 남은 끄트머리... 삐죽삐죽 어차피 접시에 올리기도 뭣한... 거 왜 있잖나, 칼질을 끝낸 분식집 아줌마가 낼름 자기 입안으로 쑤셔넣는 그거, 그런 거.
동료는 한때 그가 잘나가던 시절 그에게 빼앗긴 실적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한때 그런 개판에서 그가 욕했던 동료들과 다를바없는 짓들을 해 왔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요. 그러나 그의 독백을 따라가고 있자면 그의 이러한 면모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됨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그를 당당하게 비난할 수 있나요? 오히려 어물쩡 변명하며 넘어가려 하는, 오히려 그들과 자신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데에 억울해하며 되지도 않는 허세를 부리는 그가 안쓰러워지지는 않은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만큼 말이에요. 그를 나무랄 마음보다도, 우주에 가득찬 별들 중 제 별은 커녕 제 집 하나 쉬 얻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팍팍하고 막막하고 깝깝한 마음이 들고 있지는 않나요?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오게 된 것인지, 낭떠러지까지 몰리게 된 각자의 사연을 늘어놓다가, 그는 우연히 동료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시점부터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지요.
나 달에 갔었네, 김상호가 얘기했다.
달에 갔다고?
그렇다네.
거길 어떻게.
네비에 찍고 줄곧 가면 나온다네.
산소도 없잖나.
먹고 살아야 하는 마당에 산소 따지게 생겼나?
(...)
내가 알기론 우주엔 암흑물질인가 뭔가, 또 태양방사선이니 뭐니 겁나 위험한 곳이라던데.
여기서 돈없이 사는 것보다 위험하진 않네.
니미럴, 방사선에 뒈지면 어쩌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소설의 배경은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됩니다. 그가 사생결단으로 결심하고, 화성으로 향하는 그 때부터 말이에요. 잘나가는 동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고급 세단을 한대 빼서, 무작정 네비를 찍고, '파리 떼 같은 인공위성을 피해'서 그는 화성으로 출발합니다. 그들의 대화대로 산소도 없고 암흑물질이니 태양방사선이니 하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라 그런 것인지, 그가 정말로 악에 받친 절박함으로 운전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말마따나 차도 안 막히고 해서 수월했던 것인지 그는 생각보다 쉽게 화성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 다이내믹한 이야기는 거대한 암컷 화성인을 마주치는 데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르지요. 그들은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여긴 우리뿐이야. (...) NASA 친구들은 겁이 많았는데 당신은 겁이 없네?
그 친구들은 먹고살 만하거든요.
그럼 당신은?
전 가진 게 독밖에 없습니다.
난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데. (…) NASA에서 오자마자 전부 개발에 들어갔거든. 보상받은 사람들은 노가 났지, 노가.(…)
좋으시겠습니다.
좋긴 한데… 잘 모르겠어.
왜요?
외로워.
그렇습니다. 처음 마주친 화성인, 그와 단 하나의 교집합도 없었고 없고 앞으로도 없을 완전히 다른 자아, 난생 처음 보는 새로운 개체가 하는 말.
외롭다고 합니다.
전우주적 외로움
에리히 프롬은 인류의 역사를 두고 ‘외로움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인류는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갈수록 역설적으로 그가 태어난 자연으로부터 유리되고 분리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곧 이러한 자연으로부터의 외로움을 극복하려 시도하는 역사, 즉 ‘외로움의 역사’라는 것이죠. 이는 외로움의 역사가 비단 각 개인만의 고독한 역사가 아님을 반증합니다. 보세요, 이러한 에리히 프롬의 말을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라도 되듯, 화성인도 결국 외롭다는 고백을 털어놓습니다. 화성에서도 지구에서도, 먹고 살 만해도 그렇지 못해도, 돈벼락을 맞아 세단 세 대쯤 사 주는 사람이나 돈이 없어 화성까지 죽을 결심으로 가는 사람이나, 아무도 외롭다고 말하지 않을 뿐 다들 결국 사무치도록 외로워하는 것이지요.
그는 이 암컷화성인의 외로움을 기가막히도록 캐치하고, 엄청난 순발력과 침착함, 경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노련한 센스, 고객에 대한 배려심을 십분 발휘해 눈물겨운 세일즈에 성공합니다. 그것도 계약을 세 건이나 성사시키지요. 어떻게 한 거냐구요?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게요. 그녀의 외로움과, 이 소설의 발칙한 제목과 관련해서, 오랫동안 남편의 무관심 속에 독수공방을 했던, 신장이 칠팔미터에 달하는 이 암컷화성인에게 지구인의 세단이 어떤 용도로 쓰였을지. 앞에 어디선가 이런 풍경을 본 것 같기도 하지 않나요? 단지 스케일이 우주로 확장되고, 인물과 구도가 바뀌면서 그대로 변주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으시나요? 그래서 이 코믹한 소설의 결말은 사실 참 비극적입니다.
진짜 비극이 어떤 건지 당신은 모른다. 삼 년 전부터 좆은 안 서고, 일 년 가까이 돈도 못 벌고 회사에선 팽烹... 정신을 차려보니 마누라의 서랍 속엔 딜도가... 말하자면 그런 건 비극의 미끄덩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비극의 진짜 알맹이는 작은 살구씨처럼 그 속에 숨어 있다(그렇다고 비극이 피부에 좋다는 얘긴 아니다). 그 중심에, 작지만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그런 기분을 알까 모르겠다. 마누라의 딜도는 수입 명품도 고급 진동형도 아니었다.
일반 막대형이었다.
그는 화성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오메가3가 들어간 식단을 짜는 화목한 가정이 될지도 모른다고. 왜, 불만이라도 있느냐고. 당신도 나도 이 우주의 유명한 욕심꾸러기들 아니냐고. 그리고는 뻔뻔하고 태평스럽게 반문하지요. 당신이 언제 나한테 차 한 대 팔아줬어?
'진짜 비극이 어떤 건지 당신은 모른다'고 그는 말합니다. 비극이란, 이를테면 이런 거에요. 우주 공간에 가득 들어찬 별들을 헤아려보면, 우리가 그것들을 일초에 한 개씩 평생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대부분 우리가 평생 빛의 속도로 가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구요. 우주 공간의 넓이를 체감하면 체감할수록 우리네 삶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홀로 떠 어딘가로 빛을 보내는 별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외로웠고, 외롭고, 앞으로도 외로우리라는 사실은 참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비극적인, 전 우주적 차원에서 비극적인 일이지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외로움이야말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공통분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진짜' 비극은 바로 여기 있어요. 우리가 지표면 위에서 모두 결국 적적하고 외로운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어진 스스로의 우주와 교감과 소통을 시도하는 대신, 또다른 인생들을, 또다른 가능성을, 또다른 우주를 끊임없이 질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러나 또 동시에 우리는 단 한순간도 우리를 감싸는 이 환경, 이 우주, 당신과 저라는 자아에서 단 한발짝도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
우리가 아무리 생에 쫓기고 낭떠러지까지 몰리는 상황에 이르러도 우리는 이 지구의 대기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돈많은 화성인을 만나 대박이 날 수는 없습니다. 설령 네비를 찍고 화성에 이르러 화성인에게 차를 팔 수 있는 기적같은 상황이 찾아온다고 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러면 수완좋은 다른 차팔이들이 또 다른 별들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겠고, 그러면 누군가는 또 노가 나겠고 누군가는 또 울상을 지을 거거든요. 그리고 그 가운데 대박이 난 사원의 아내는 고급 세단 한 대 급으로, 계약직으로 밀려난 사원의 아내는 싸구려 일반 막대형 딜도 급으로 각자의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겠구요. 자, 이제 문제입니다. 우리는 정녕 외로움마저 세단과 싸구려 일반 막대형의 차이로 무게를 재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러면 당신의 외로움의 무게는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문제 하나 더. 이 이야기는 도대체 누구 이야기일까요? 모르겠다면, 글쎄요. 이 이야기가 지금 당장 제게 닥친 얘기가 아니라고 해서,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라도 있나요? 그렇다면 이는 과연 비극인가요, 희극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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