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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주의사항 ※
① 이 글은 책을 읽으신 분들에 맞춰 쓰여졌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② 이 글은 편혜영 단편집 『저녁의 구애』(문학과 지성사, 2011)를 참고했습니다.
③ 문장 일부의 직접 인용은 큰따옴표 표시를, 문장 전체 인용이나 간접 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로 표기했습니다.
일상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섬뜩함
‘기괴함’과 ‘섬뜩함’에 대한 논의로 글을 시작해보자. 국어사전을 보면 ‘기괴하다’는 ‘외관이나 분위기가 괴상하고 기이하다’이고, ‘섬뜩하다’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하다’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갑자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견해를 가장한 프로이트의 견해이다.
프로이트는 1919년에 <섬뜩함Das Unheimliche>이라는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을 통해 그는 ‘기괴함’으로부터 ‘섬뜩함’을 구별해내었다. 그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섬뜩함이란 친숙했던 어떤 것이 억압의 과정을 통해 멀어졌다가 갑자기 자신의 삶 앞에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보는 낯선 것을 마주했을 때의 기괴함과는 전혀 다른 단어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예로 간질과 정신착란이 발생할 때나 분리된 신체의 한부분이 움직일 때를 든다. 친숙했던 것 -평상시 모습의 간질 환자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팔- 이 갑작스레 낯선 모습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 환자나 몸에서 분리되어 혼자 움직이는 팔- 으로 다가올 때 섬뜩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편혜영, 저녁의 구애 앞 표지 (출처 : 알라딘)
편혜영의 단편 「저녁의 구애」는 섬뜩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그동안 편혜영 소설들이 주로 ‘기괴함’을 다루었다면, 이번 『저녁의 구애』에 실린 단편들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섬뜩함을 그려냈다.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 「저녁의 구애」에서 섬뜩함을 자아내는 대상은, 인간이면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죽음이다.
주인공은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 곁에 놓여있다. 대강의 큰 줄거리는 이러하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은 예전에 자주 찾아뵙던 어르신이 곧 돌아가신다는 소식과 함께 장례식 화환을 부탁받는다. 화환을 싣고 380킬로나 떨어진 장례식에 도착했으나, 어르신이 아직 돌아가시지 않아 장례식장 근처에서 어르신의 죽음을 기다린다. 그 와중에 김의 곁을 지나가던 트럭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불이 타오르는 광경을 목격한다.
김에게 죽음이란 자신이 대면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일이었다. ‘그에게 탄생은 지나간 일이었고 소멸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48) 이러한 그의 관점은 지진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김에게 지진은 먼 땅 어딘가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전쟁 얘기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피해를 안긴 다른 나라의 쓰나미나 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있다는 얘기와도 같았다.(51) 지진 대신 죽음을 집어넣는 데도 그의 생각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죽음이 돌연 섬뜩한 것으로 변한다. 그것은 마라토너의 환영을 통해 시작되어 트럭의 사고로 확실시 된다. 마라토너가 보여주는 극한의 상황과 트럭이 가드레일에 부딪혀 조등처럼 활활 타오르는 장면들을 통해, 죽음은 다른 사람의 문제라는 익숙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문제라는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는 깜짝 놀라 휴대전화를 꺼내 방금 전에 그만 만나자했던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제야 다시 소설의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저녁의 구애.
섬뜩하게 돌아온 죽음을 마주했을 때, 그는 왜 구애를 했을까? 물론 소설 속의 그 자신도 모르며, 충동적으로 한 구애를 후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조심스레 추측해보자면, 익숙했던 죽음이 낯설게 돌아오면서 익숙하게 생각했던 사랑도 낯선 모습으로 그의 마음 속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하지만 귀찮은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운명 앞에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최선의 보호막이라는 것을 느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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