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구의, 당신의 이야기]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은 이야기

너   무    놀   라   지    마   라


 


 안녕하세요, 당신. 빙구에요.

 

 저는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어는 헤엄치지 않으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린다고요. 그들에게 있어서 멈춰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상어들은 잠을 자면서도,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헤엄을 치겠지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상어가 평생 동안 흔들리며 만드는 물결의 수를 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마찬가지겠죠, 쉴 새 없이 물결을 만들며 움직여야만, 흘러가야만 생이 있고 또 생이 있어야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있어야 다시 생이 있겠지요. 희극이 있어야 비극이 있고, 또 비극이 있어야 희극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가져온 이야기에는 몇 사람의 비극적인 죽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은 극중 내내 무척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곤 하지요. 사실 이 비극이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어 온 것이라 이들에겐 그다지 놀랄 것도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혹여, 이 이야기에 너무 놀라지는 말아요. 딱히 비극이랄 것도 없어서 어쩌면 희극에 가까운, 오히려 그래서 더 비극적인, [너무 놀라지 마라]입니다.

 

 


죽음과 분간할 수 없는

 


 첫 번째 죽음을 소개합니다. 이 극은 늙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베갯잇에 장례치를 돈을 넣어두고, 손톱발톱을 정갈하게 정리하고서 그는 화장실에서 목을 맵니다. 집을 나간 아내와 영화를 찍는다며 오랜 시간 집을 비우는 장남,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둘째와, 노래방도우미로 일하며 몸을 파는 거짓말쟁이 며느리를 남겨두고요.

 


둘째 : 눈 좀 감아 아버지. 감으라니까

아버지 : 나좀 내려줘!

목아파 죽겠다!

나좀 내려줘!

나 목 부러지겠어!

둘째 : 나 좀 쳐다보지 마!

자꾸 그러면 나 진짜 이집 나간다!

아버지 : 가지마! 나 심심해

둘째 : 아 배야!

아 왜 여기서 죽은거야

 


 손톱을 깎으며 그는 둘째아들에게, 같이 낚시를 다니던 친구의 유언을 들려줍니다. 전단지 뒤편에 사인펜으로 휘갈긴 유서, ‘너무 놀라지 마라…….


 그의 바람대로, 식구들은 정말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시체 썩는 냄새가 똥냄새와 섞여 진동을 해도 장례를 치를 생각보다 고장 난 환풍기를 고칠 생각을 먼저 하지요. 썩어가는 아버지가 풍기는 악취를 참는 것을 인내라고 표현하면서요. 아버지는 극 내내 화장실 천장에 매달려 나 좀 내려줘, 나 좀 내려줘 하고 애원합니다. 그리고 비로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죽기보다도 더 비참했던 그의 생을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 둘째야 둘째야!

(사이) 아 죽는 게 이런 거구나

난 몰랐다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이걸 선택했는데

여기서도 난 혼자다.

살다보면 의무 방어라는 게 있지

하기 싫어도 무조건 해야 하고

죽기보다 가기 싫은 곳도 없는 돈에 택시타고 가고

내 짝이 꼭 그짝이다

낚시터엘 갔더니 주인이 문자메세지를 보여 주는거야

그 놈 때 돼서 죽었거니 생각하고

좌대 찾아 자세를 잡는데 돈 받을 생각을 안 해

그러더니 매운탕 한 그릇에 소주 몇 병 들고 오더니

속 데 핀 다음 자기 차 타고 같이 문상을 가자네

내가 그 새끼 죽은 델 왜마음속으론 이러면서

술 몇 잔 들어가니까

그래 당구장 너도 참 이 세상 힘들게 살아왔다!” 싶더라구

차 타고 한 시간 쯤 왔나?

분당에 있는 병원인데 꽤 크더라고

봉투만 내고 나오려는데

낚시터가 국화 꽃 한송이 올리래

안에선 요단강 어쩌구 찬송가 나부랭이 들리고

근데 이게 뭔 개 뼉따구 같은 시추에이션이냐?

왜 그 새끼 영정 옆에

집 나간 내 마누라가 눈물 뚝뚝 흘리고 있는거니

왜 내 마누라가 흰 소복입고 거기서 나랑 맞절 올리는 거냐구?

 


 너무 놀라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택했지만, 어쩌면 너무 놀란 것은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 자신이었던 건 아닐까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집나간 아내 모습에, 상복 입은 자신의 아내와 맞절을 올리고 있는 자신의 끔찍하도록 비참한 꼴에 너무 놀란.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끔찍한 그의 삶에 너무 놀라고 또 한편 너무 질려서 그는 스스로 죽음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죽은 후에야 깨닫게 됩니다. 죽어서도 그는 그의 냄새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는 그의 삶이 이미 죽음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과거에서부터 오랜 시간동안 죽어 있었다는 것을. 이렇듯 극에 드러나는 첫 번째 죽음은 사실 아주아주 오래 전, 그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에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꿈에 젖물리는

 


 두 번째 죽음의 주인공인 며느리를 소개할게요. 사실 죽음이라기보다도 살아있지 않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서 과연 살아있었던 순간이 있었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인물이거든요. 그녀로 말할까 하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이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하구요. 매일 밤 덕지덕지 칠하는 화장처럼요.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술이 없으면 하루도 넘기지 못하는 알콜중독자가 되어 그녀의 꼬인 인생을 매일같이 한탄합니다. 그러나 그녀도 그녀 인생의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시작한 거짓말이 어디서부터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였는지 알 수 없듯이요. 지독하리만큼 이기와 허영, 야망으로 점철된 남자를 사랑했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요. 하지만 정말로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사랑하긴 했을까요? 답은 그녀만 알겠죠. 아니, 사실은 그녀도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아버지 : 아가야 잘 살아라

며느리 : 아버님이나 잘 사세요

(둘째에게)팁까지 주면서 술 따라 주는데 어떻게 거절하냐?

미친 새끼들! 한번만 가재

여관 가서 따악 한잔 더 하재

아니 술을 왜 여관 가서 마셔

술집에서 마셔야지 모텔도 아니고

아버님 요샌 솔직한 새끼들이 없다니까요

그냥 다이렉트로 아줌마 나랑 한번 자자

이러면 얼마나 좋아요 정직하게

그럼 나도 외로우니까 잠깐 망설이다

하루 밤 같이 몸 풀 수 있는 거 아닌가?

제가 몸팔러나가는 거지 진짜 노래방 도우민가?

안 그래요 도련님

눌러봐 2556!

(노래한다)

 

추억이 흘러내려 내 맘에 젖어있네

쌓여진 옛 이야기 잊을 수 없다네.

바람이 나부끼면 나뭇잎 떨어져서

내님에게 날아가 소식 전하지.

~ 바람아 불어라

내 님 있는 그곳까지 불어다오

짜자잔 짜 짜자잔

짜짜자자 짜짜자 짜짜짜잔

 

들어간다

여보 나 왔어 여보!

둘째 : 형 없잖아

형수 : 알아 임마 자식아

아무도 없지

 


 분명한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덕적 덕목과 그녀가 영위하는 삶의 존엄 따위는 미처 생각해 볼 틈새도 없이, 그녀의 삶이 생존 앞에서 정신없이 치여 왔다는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술에 잔뜩 취해서, 밤마다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추악한 거짓말과 가식을 비웃고 추억과 사랑을 노래합니다. 과연 행복했던 적이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운 거짓말쟁이 그녀가 말이에요.

 

 

: 질투?

내가 뭐에 대해서 질투를 느껴야 하지?

사랑? 가족? 행복한 소리 하지마라

질투는 지금 니가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둘째 : 형수 이 꼴 좀 봐

환풍기 하나 못 고치는 위인이 비굴하기까지 하네

: 왜 밀라노에 있는 자식 생각나서 슬퍼지니?

왜 보고 싶으면 전화라도 해봐 그런데 어쩌지?

니 애는 지금 한국말 다 잊어버렸을 걸

여보 이태리 말로 잘 있었니가 뭐지?

며느리 : 꼬메스타이(come stai)

: 생각보다 발음도 쉽네, 꼬메스타이(come stai)

 

 

 그녀에게도 한때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이태리로 입양보낸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남편이 아니라 남편의 동생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놀라운 말이 진짜일까요? 이것도 그녀만이 알겠지요. 시동생이 먹을 게맛살이나 독한 관장약 따위를 늘 챙겨주고, 밤마다 독수공방하는 형수의 이불 속으로 고양이처럼 파고드는 시동생을 내버려두는 그녀가 사실 한번쯤은 시동생과 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어쨌든 이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시동생이 되었다가, 불알 두 쪽밖에 없는 남편이 되었다가, 노가다를 뛰는 밤손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녀가 그리워하는 사랑과 아이와 소망은 허상뿐이고, 그녀는 껍질만 남은 모성애에서 젖을 빠는 것은 그녀의 아이가 아니라 밤마다 바뀌는 그 아이의 아버지인 걸요.


 그녀는 매일 밤 웅웅거리는 마이크와 촌스러운 불빛, 치맛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손님들 사이에서 꼬메스타이, 꼬메스타이 하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 있었는지조차 의문스러운 추억과 사랑과 꿈에게 잘 있었느냐, 잘 있었느냐고……. 그러나 그녀의 안쓰러운 노래는 머나먼 이국 땅으로, 그녀가 한번도 닿아본 적 없는 행복한 삶과 한때 그녀의 모태에서 뛰었던 심장을 가진 아이에게로 흘러들지 못하고 더러운 방구석에 고이기만 합니다.

 

 


죽은 모태에 기생하는

 


 이 퀴퀴하고 더러운 방에 남겨진 세 번째 죽음 차례입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한발짝도 밖에 나가지 못하는 히키코모리 둘째아들이 그 주인공이랍니다. 그는 형수를 엄마와 동일시하여 모성으로부터의 애정결핍을 형수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성적 욕망으로 바꿔버린 인물입니다. 방구석에 누워 집에 남은 엄마의 희미한 그림자를 더듬으며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그의 모습은 그가 사는 방을, 생이 내뿜는 독소를 배설하지 못하고 죽음의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그의 무겁고 더럽고 낮은 방을 그대로 빼닮아 있습니다.

 


둘째 :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버지 냄새 지독히 싫어하는 거

그래서 같이 있기도 싫고 쳐다보기도 싫고

지금처럼 이렇게 애기하는 것도 지긋지긋해

아 숨 막혀!

지금도 나, 토할 거 같은데도 억지로 꾹 참고 있는 거야

안 보여 나 참는 거?

지금 요 아래 목구녕까지 게맛살이 쭈욱 올라와 있어

근데 왜 내가 아버지

그 당구장 친구 장례식 얘기 듣고 있는 줄 알아?

내 방 냄새보단 보다 나으니까

내 몸 똥구멍에서 나는 냄새 보다 나으니까

어쩌지 아버지

아버지 냄새보다 내 몸 썩는 냄새가 더 독한 걸

내가 바보야,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몸 썩는 냄새를?

왜 나도 아버지 죽을 때 같이 죽어줄까?

같이 베란다에서 목 메 줄까

근데 어쩌지? 우리 집은 베란다도 없는데

 


 둘째의 말대로 아버지는 베란다도 없는 탓에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죽어갑니다. 하필이면 둘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화장실에서요.


 이 화장실은 변비와도 같은 이 가정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나날들이 밀려들어오는데, 이 나날들을 소화할 수 없는 인물들을 품은 그 방은 결국 시간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공간이 되고 맙니다. 어쩌면 이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들이 부재한 데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비극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내내 심화되는 이러한 비극은 계속되어 중첩되고, 급기야는 며느리가 집안으로 끌어들인 외간남자와 남편, 며느리와 둘째가 시체를 앞에 두고 한 자리에서 화목한 대화를 나누는, 엽기적이다 못해 우습기까지 한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됩니다.

 


남자 : 누나 이집은 좀 다른 줄 알았는데 사는 게 다 똑같네

우리랑 같애 내 집 같애

아 그러고 보니 정말 환풍기가 안 도네

그러니까 이렇게 공기가 탁하지

며느리 : 해 봤어 저런 거?

남자 : 해본 일만 하면 평생 아무 일도 못하지

다음에 고쳐 드릴 게요 쉬워요

근데 언니 아버님 때문에 작업하는 게 골치 아프겠네

둘째 : 정말 고쳐줄 거야?

남자 : 그럼

둘째 : 언제 올 건데?

남자 : 뭐 아침이라도 당장

둘째 : 우와! 형 들었어? 저 얘기? 형수님!

남자 : 처음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는데 지금 왁자지껄한 게 사람 사는 집 같네요

누님 갈게

며느리 : 저녁때 봐

둘째 : (열쇠 주며) 언제라도 와! !

 

남자 며느리와 키스하고 나간다

 

둘째 : 고마워 형수!

: 시원하니 이제?

형수 친구 앞에서 지 형 치부 드러내 보이는 게 그렇게 좋아?

둘째 : 어쩐지 저 형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달랐어

우리 식구들이랑 분위기가 달라

남을 배려해주고

며느리 : 여보 도련님 웃는 거 오랜만이지? 어때요?

모처럼 모든 가족이 모였는데 우리 술 한 잔 하는 거

: 가봐야 하는데 한잔만 하지 뭐

 

둘째 술을 꺼낸다

 

며느리 : 저 남자랑 누워있었어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저 남자가 내 귓불 빨아주는데 달콤하고 몽롱했었어

여보 그런 기분 알아?

손을 잡았지

아까 봤지 당신? 저 남자 손 큰거.

당신 손보다 크고 두툼해

근데 얼마 안 있어 땀을 흘리더라고

내가 좋은가봐

나도 생각해 봤어

나도 정말 이 남자가 좋은지

이 시간이 행복한지

그러다 또 이런 생각도 해봤어

우린 왜 한 번도 우리 앞날과 우리들의 아이

그리고 소망에 대해 얘기하지 않은 거지?

: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며느리 : 맞다

다 부질없지

 


 당신, 보이시나요? 다른 남자가 끼어든 가정의 대화에서 거짓말처럼 활기가 돌고 웃음이 피고 있는 것을? 당신은 이 비극적이다 못해 희극적인 광경에서 처참하게 바다 밑바닥으로 침몰하는 가정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단절된 채 썩어가는 한 가족의 병리는 극에 달하고 마침내는 파멸의 길을 걷지요. 마치 죽어가는 고목을 숙주삼아 핀 독버섯에 화색이 돌 듯, 죽은 모태에 기생해 마지막으로 생기를 내뿜는 이 환한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너무 놀라지 마라]에서 우리는 바다 밑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아버린 몇 마리의 상어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경직된 사체가 생전에 빚은 수천 수만 개의 물결들이 고이고 고여 풍기는 냄새를 발견하고, 그리고 그 냄새에 코가 막혀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 심지어는 냄새가 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가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글을 풀어가는 동안 저는 이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몇 명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죽음은 과연 몇 개인지. 당신도 한번 세어보세요. 그럼 당신은 이렇게 대답하겠죠? 음, 우선 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둘째가 있겠죠, 라고요. 흐음. 과연 그게 다인가요? 라고 반문하면 당신은 머뭇거리며 어쩌면 며느리가 끌어들인 외간남자와 며느리의 남편까지 모두 해당될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요 하고 또다시 물으면 이번엔, 놀랍게도 또 있다고? 라고, 당신이 이쪽으로 반문할지도 모르겠네요. 글쎄요, 놀랍나요? 그렇지만 과연 그게 과연 놀라운 일일까요? , 글쎄요, 하긴…… 너무 놀라운 일들이 많은 이야기긴 하죠. 그래서 어느새, 저 놀라운 풍경을 놀라지도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당신 자신의 모습은 이제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게 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