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좀 해주세요.’

5월 축제의 달에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락 페스티벌이나 재즈 페스티벌, DJ 페스티벌에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게 된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축제’를 즐기며 사람을 만나고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보다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노래나 연주가 된다. 음악에 집중하고 싶은 그는 주변의 시끄러운 대화나 산만한 움직임이 거슬린다. 이 때 그가 ‘음악에 집중하고 싶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우스꽝스러운 주문을 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탁은 클래식 음악회에서는 전혀 우습지 않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담당자도 있으니 말이다. 또 다시 낯선 질문을 던져본다. 왜 유독 클래식 음악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지. 반대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에는 왜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거쳐야 하는지.

 

 

사교의 공간에서 감상의 공간으로

18세기 연주회의 모습은 지금의 엄숙하고 고결한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당시 연주회를 즐길 수 있었던 사회적 계급은 귀족이었다. 어쩌면 연주회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이 귀족이 아니라, 연주회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청중층이 귀족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연주회는 귀족들의 개인적 인맥을 통해 유지 및 흥행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연주회에서 다른 집안의 귀족을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카드놀이를 했다. 연주회는 음악을 듣기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귀족이라는 소수층의 사교장이나 음악이 있는 파티 정도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가사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성악곡을 연주할 때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인쇄해서 배포하기도 했고,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지휘자가 힘겹게 지휘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중에서 음악에 집중하고자 한 관객도 있었고 다른 청중의 지나친 소음이나 행동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한 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연주회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던 청중들 자체가 귀족이라는 닫힌 집단이었고, 그 안에서도 음악에 큰 관심을 두는 사람은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만으로는 연주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들이 주변에 불만을 이야기하는 순간 앞서 상상한 것과 같이 페스티벌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빈축을 샀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러한 연주회장의 모습은 19세기 새로운 사회가 성립되면서 점차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전체적인 모습의 변화는 음악가와 청중의 관계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귀족들의 연주회에서 음악가와 청중의 관계는 개인적인 인맥으로 성립되었다. 음악가가 알고 지내는 귀족이나 귀족의 지인 등의 친분에 기대어 표를 팔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통해 부와 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 계급이 연주회를 지지하는 계층으로 가담하면서 개인적인 관계는 비개인적인 관계로 변하게 된다. 연주회는 상업적 매니지먼트를 기반으로 하게 되고 불특정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표를 팔면서 상업적인 관계로 전환하였다. 즉 연주회가 대중문화화 된 것이다. 이제 표를 살 사람은 음악에 관심이 있고 구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만큼 음악회의 관객 수도 급속히 팽창했다. 연주자와 개인적 친분이 없으면서 양적으로는 많아진 관객들은 연주회를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찾았고, 연주회의 사교적인 사회적 기능은 점차 상실되었다.

 

 

진지파 vs 오락파

연주회가 대중문화화 되는 과정에서 장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음악가를 통해 출연료와 판권료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들은 표를 많이 팔기 위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했는데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한 명의 스타를 만드는 것이 가장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스타가 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많이 받는 가수일수록 더 많은 출연료와 판권료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콘서트와 같은 원리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재미나 신선한 것을 추구하다보니 오락을 목적으로 한 연주회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연주회의 성립은 반대로 음악의 진지한 감상을 조장하기도 했다. 새로운 사회가 성립되면서 점차 학식있는 청중도 증가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주회도 상업적 기반을 다져나가기 시작한다. 그 때 학식있는 청중을 방해하던 다른 청중들은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연주회에 이미 흡수되었기 때문에 진지한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연주회는 더욱 쉽게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주회에서 관객들은 오늘날과 같이 집중적 청취의 형태를 취했다.

이렇게 연주회를 ‘진지한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지 아니면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진지파’와 ‘오락파’로 나뉘어진다. 청중의 질에 따라서 연주회의 기능이 분화된 것이다. 두 진영은 점점 대립관계로 발전한다. 이 때 수적으로 열등한 진지파는 윤리의 문제를 제시한다. 음악을 감상할 때는 작품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방법이며, 오락을 목표로 하는 감상은 상업주의에 물든 감상은 나쁜 취향이라는 것이다. 진지파가 취한 또 다른 전략으로는 ‘고급’ 대 ‘저급’이라는 대립적 가치를 음악에 차용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즉 음악 감상을 그 작품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정신적인 활동으로 고급이며 학식있는 사람들의 것으로, 그저 즐기는 음악은 저속한 사람들의 것으로 선을 그어버렸다. 이러한 선 긋기와 윤리적인 정당화가 맞물려 진지파는 결국 주도권을 쥐게 되고, 그들에 의해 오늘날의 연주회 윤리나 연주회 모습이 확립되었다.

진지파와 오락파의 갈등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의 대립이 거장과 비르투오소라는 새로운 대립항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르투오소는 매우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종종 비르투오소는 기교적인 면은 뛰어나지만 감정이나 표현의 전달 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당시 비르투오소는 뛰어난 기량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적합했다. 상업주의적인 장사가 목표였던 오락파에서 비르투오소는 판권료를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요인이었다. 반면 진지파에서는 비르투오소의 기교 중심적인 면을 비판하며 거장을 영웅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베토벤과 같은 거장들의 전기가 그 시대에 특히 많이 출판되었던 사실은 그러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거장의 우상화는 유행이나 순간적인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영원하게 만들 수 있었다. 진지파의 승리로 거장은 연주회의 프로그램에서 곡과 나란히 적혀있는 위상을 얻는다. 이는 오늘날 대중가요의 작곡가가 가수에 비해 훨씬 적은 위상을 가지는 것과 비교했을 때 클래식에서 작곡가, 즉 거장의 위상이 얼마나 높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당연한 건 없어’

클래식은 정신적으로 고급의 활동이라는 것에, 프로그램의 곡 옆에 나란히 쓰여진 작곡가의 이름에도, 심지어 클래식은 작품의 내용에 집중하여야 한다는 규칙에도 모두 이유가 있다. 오늘날의 연주회는 거의 청교도적 윤리를 요구한다. 이러한 윤리에 하나씩 ‘왜’라는 낯선 질문을 해가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연주회의 감상 형태가 수많은 청취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조금은 생소한 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