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의 그림 한 장을 보여주고,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이라는 의아한 결론만 툭 내던진 채 2주 뒤에 알려주겠다던 삐아오가 2달만에 돌아왔다.^^; 제대로 된 휴재 공지도 없이 궁금해하는 독자를 남겨둔 채 늦게 온 걸 사과하며, 다시 마티스의 <피아노 레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음악에 주목하기에 앞서 그림의 기하학적인 부분에 주목을 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삼각형이다. 그것도 비슷한 모양의 직각 삼각형이 반복되고 있다. 그림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 그림은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연습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다시 <평균율 피아노곡>이 구성되고 있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은 푸가 형식의 대표적인 곡이다. 푸가 형식부터 설명하자면 핵심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부’인데 중요한 것은 성부가 하나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합창에서 모두가 하나의 선율을 부르기보다 좀 더 풍부한 노래를 위해 성부를 나누어 화음을 넣는 예를 생각하면 쉽다. 이렇게 성부가 여러 개인 것은 ‘폴리포니(polyphony)’라고 하는데 ‘여러 개’를 뜻하는 라틴어 ‘poly'와 ’소리‘를 뜻하는 라틴어 ’phony'가 합쳐져서 말 그대로 여러 소리라는 뜻이다.


푸가를 정의할 수 있는 두 번째 특징은 ‘모방’이다. 앞에서 살펴 본 성부들이 시작 부분에서 나오는 주제를 계속해서 모방하는 것이다. 성부가 여러 개라는 것은 음의 높이가 상이하다는 것이므로, 각각 다른 음을 가지면서도 주제는 똑같이 모방하는 식의 진행이 곡 전체에 걸쳐서 되풀이된다. 개인적으로 푸가의 ‘모방’이라는 특징을 알게 된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바흐의 협주곡을 좋아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새롭고 예상하지 못하는 음악보다 익숙하고 안정된 느낌의,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음악을 좋아하는 성향인데 바흐는 모방을 통해 이런 내 취향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그림에서는 직각 삼각형이 바로 도입부에 제시되는 주제가 된다. 도입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차지하는 면의 넓이나 회색 벽에 뜬금없다고 느껴지는 초록의 색 때문에 가장 먼저 인식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책상 옆면의 직각 삼각형과 피아노 위의 메트로눔, 심지어는 소년의 앞머리까지 직각 삼각형이 여러 번 등장하면서 서로를 모방하고 있다. 대신 책상 옆의 삼각형은 색이 다르고, 메트로눔은 직각 삼각형에서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삼각형이고, 소년의 앞머리에 있는 삼각형은 아래쪽으로 선대칭이 되어있다. 즉 감상자가 삼각형이 주제인 것을 알 수는 있으나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주면서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이런 특징은 원래 2차원이 아닌 것을 2차원으로 그려내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해왔던 작가 마티스가(삐아오의 들리지 않는 음악 [Op.16] 참조) 푸가 풍의 음악적 작곡기법 역시 2차원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노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실 위에서 말한 폴리포니와 각각의 성부가 선율을 모방한다는 두 가지 특징은 대위법적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위법(counterpoint)은 ‘점대점(point count point)’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대위법은 하나의 선율에서 시작되어 각각의 성부가 그 시작되는 선율을 모방하는데 이 때 성부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합되면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는 대표적인 작곡 기법이다. 기악음악에서 대위법이 사용된 악곡 형식이 바로 위에서 살펴 본 푸가인 것이다. 바흐는 푸가 작곡가로 가장 잘 알려져있는데 바흐가 활동하던 당시에 푸가는 독립된 형식으로 쓰이기보다는 흔히 다른 악곡의 한 부분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주제 삼각형으로부터 선대칭 되어있는 삼각형의 앞머리를 단 채 피아노를 치고 있는 소년의 표정은 무표정하다. 무표정하다고까지 표현하지 않더라도 음악을 즐기고 있는 느낌을 주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앙리 마티스는 대위법적인 푸가 형식의 엄격한 구성을 그림에서의 엄격한 구성으로 이조시켜서 표현함으로써 <평균율 피아노곡>의 음악으로서의 한계를 꼬집고 있다. 그에게 <평균율 피아노곡>은 연주하는 곡이라기보다 기술처럼 숙달해야하는 대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실 회화는 아무것도 말해주지도, 들려주지도 않는다. 침묵하는 대상을 두고 특정한 곡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위험한 시도이다. 그림의 구도를 조금 다르게 음악적 구성으로 읽어보면서 감히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곡>이라고 이야기해보았다.(바흐에 관한 글이라 작품번호도 살짝 바꿔보았다. 독일의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바흐에게 특별한 음악적 지위를 부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일반적인 작품 번호 ‘Opus’ 대신 바흐만의 작품번호로 ‘BWV’를 쓴다.) 결국은 조용한 회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이상할 것 없지만 그래도 음악이 같이 들린다면 좀 더 새롭고 재밌는 감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