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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정명훈의 모습이다. ‘마에스트로 정’의 사진을 보고있자면 그의 표정과 지휘봉을 들고있는 손 끝에서 어떤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미 현실의 세속적인 논리에서 벗어나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음악의 세계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가 사는 음악 세계에서는 현실적인 계산이나 돈이 없이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한 환상을 깨뜨린 사건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다. 정명훈의 고액연봉 논란에 휩싸이며, 연봉 인하와 서울시향 재계약 건을 두고 박원순 서울 시장과 협상하는 정명훈의 모습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예술가가 ‘돈’ 때문에 ‘정치인’과 협상하는 이 생소한 모습은 예술이 돈이나 정치 등의 현실과는 독립된 어떤 신성한 영역일 것이라는 생각이 환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오늘 <삐아오의 들리지 않는 음악>에서는 그 환상을 조금 더 깨보려고 한다. 예술에 가려 들리지 않는 노동, 보이지 않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오케스트라는 흔히 작은 사회로 비유된다. 지휘자라는 지도자를 따라 각각의 영역이 제 소리를 내고 그것이 하나로 어우려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모습을 이상적인 사회상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작은’ 사회로, 사회의 규모만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의 모습인지 생각해본다면 독재 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저마다의 운영 체계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은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독점적으로 자신의 음악관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음악을 아름답게 연주해줄 오케스트라 단원을 선발하고, 독주자를 선정하는 권리 역시 지휘자에게 주어진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지휘자인 카라얀은 그 유명세만큼 독재적인 지휘자로 악명도 높았다.
이렇게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1인에 권력이 모이기 쉽기 때문에 단원들이 음악 혹은 운영에 관한 결정권을 갖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사회 모습에 발맞추어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권력의 민주적 분배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어떤 오케스트라는 독재자인 지휘자를 아예 없애기도 했고, 어떤 오케스트라는 단원들이 함께 모여서 ‘예술가도 노동자다’라며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와 노조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연결되어 만들어진 ‘오케스트라 노조’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노조는 다른 여느 노조와 같이 노사협약을 통해 임금 인상, 연습(노동)시간 준수, 민주주의 수호 등 익숙한 구호를 외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칫 ‘숭고한 예술의 완성’이라는 명목 아래 착취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단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오케스트라 노조가 결성되었고 그 세력을 점차 키워 지금은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기에 이르렀다. 세계3대 오케스트라 중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의 노조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비엔나 필하모닉 등의 오케스트라에서도 노조에 꽤 큰 힘이 실린다. 이들은 모두 단장 1인의 지나치게 높은 연봉과 단원들의 낮은 임금을 조율하고, 연습시간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베를린 필하모니는 전 단원의 투표를 통해 지휘자를 선정하는 민주적 방식을 오케스트라 운영에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4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지휘자 정명훈이 정권이 바뀌면서 강제 해고를 당했을 때, 나서서 해고의 부당함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다시 정명훈을 복직시키는 데 일조한 단체도 바로 바스티유 오페라 합창단 노조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케스트라 노조가 따로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10여 년 전부터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이 확산되고 있고 오케스트라 노조가 그 속의 일부로 편성되어 단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노조만의 특이하고도 핵심적인 요구를 한 가지 소개하자면 ‘오디션 제도 폐지’이다. 오디션은 원래 오페라 극장에서 가수를 채용할 때 청각에 의해서만 판단하던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배역을 정하거나 승급을 결정하는 시험의 일종이었던 오디션 제도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단원의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면서 그 성격이 변하였다. 5분에서 10분의 짧은 시간에 걸쳐 단원의 기량을 확인하고, 그것만으로 단원의 생존권까지 쥐락펴락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오디션 제도의 약점을 오케스트라의 관리자들이 단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오디션 제도의 폐지가 정당한지 아닌지의 논쟁을 떠나서, 사용자들이 노동자의 삶을 순간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모습은 비단 예술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닌 듯하다.
손에 기름때를 묻히며 일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문화예술인들이 무슨 노동자며 노동조합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직종이나 노동형태를 불문하고 모두 노동자다...
-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 소개글 일부
시청 주변을 갔다가 어디선가 상당한 실력의 노랫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길거리 공연도, 공연 홍보도 아닌 집회였다.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국립 오페라 단원들의 해고와 관련하여 해고 당사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오페라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의상없이 관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노래하고 있는 그들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집회참가자였다. 어쩌면, 예술가도 노동자다.
* 사진1. 지휘자 정명.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 사진2. 지휘자 베르하르트 폰 카라얀.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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