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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롱바오의 영화 냠냠➂ <North Country> : 여성영화, 그 상징에 대하여
3월 8일 : 세계 여성의 날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3월 8일 즈음이 되면 학교 캠퍼스와 도심 곳곳에서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 행사가 열리고, 100여 년 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빵과 장미"의 현재적 의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요.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은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임금인상, 10시간 노동시간 준수, 여성 선거권 부여 등의 요구를 외치며 루저스 광장으로 나왔고, 그녀들의 구호는 오늘날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슬로건, "빵과 장미"의 유래가 됩니다. 이 사건은 전세계 여성노동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이듬해에는 미국 의류산업 전체 여성노동자들이 13주동안의 대규모 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92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루저스 광장의 저항을 기념하고 전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자는 취지로 3월 8일을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로 제정하게 되었고, 올해는 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05주년이 됩니다. 저도 105주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니키 카로 감독의 <North country>(2005)입니다.
영화 <North country>
<North country>는 1984년 미국에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문제제기하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 여성노동자가 승소한 최초의 사건,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사건(Jenson vs Eveleth Mines)’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보면,
주인공 조시 에임즈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떠나 두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인 북부 미네소타로 돌아옵니다. 마침 새로 제정된 법에 따라 철광에서 여직원을 일정 채용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충분한 급여를 주는 직장이 필요했던 조시는 철광에 취직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철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성만 있던 곳, 남성적인 작업환경일 뿐 아니라 여직원들에 대한 시선조차 곱지 않죠. 무엇보다 여성광부들을 힘들게, 절망하게 하는 것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보다도 남성 광부들의 끊임없는 직간접적 성폭력입니다. 언어적 성희롱부터 신체적 성폭력의 위협까지, 나아가 여성의 신체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노동 환경 또한 문제적입니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조시는 문제제기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지만, 그녀의 여성 동료들과 가족들까지도 그녀의 행동에 우려를 표하며 쉽사리 동조하지 못합니다. 어차피 안 될 싸움, 직장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 좁은 동네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죠. <North country>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외로운 싸움과, 그리고 결국엔 승리하는 목소리의 이야기입니다.
상징의 원리 : <North country>에서 성폭력의 프레임을 보다.
영화 <North country>를 본 대부분의 사람은 조시의 싸움과 승리에 감동하면서도 지금 적용하기엔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North country>에 그려진 사례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헐 너무 한 거 아니야? 저걸 어떻게 참아!’라고 당연히 말할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대놓고 하는 모욕적 언사, 도시락 통에 남성 성기 모형 넣어 놓기, 담배꺼낸다며 가슴 만지기, 간이 화장실 흔들어 넘어뜨리기, 여성 탈의실에 정액 뿌려놓기…. 그러나 또, 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1984년의 일을 2006년에 영화로 소개하는 것에는 당시의 일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여성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할 것에 대한 질문도 분명히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인지 <North country>에 등장하는 일상적인 대사들은 그냥 넘기기에는 다분히 상징적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 첫 출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작업 현장을 둘러보러 나가는 여성 광부들을 보며 남성광부1은 나지막이 “창녀들”이라 말하며 지나쳐가고 그를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쳐다보는 조시의 등 뒤로 “귀마개 하세요, 레이디들.”이라 말하는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서 귀마개를 하라는 지시는 본래 작업장의 소음이 크기 때문에 귀를 보호하라는 뜻이지만 이 말은 남성광부의 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창녀들이라고 말하는 남성들의 욕 같은 것에는 그저 귀를 막으라는 조언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뿐 만이 아닙니다. 성희롱적 언사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 여성의 감정은 ‘유머’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성희롱에 대해 문제제기하려고 할 때 돌아오는 답은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입을 닫고 신경 쓰지 말고 더 열심히 일만하면 된다.’ 같은 말. 여성들끼리라도 서로 위로해가며 버텨보고자 하지만 그녀들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주문도 “더 강해져. 남자처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성폭력의 프레임은 조시의 과거와 삶을 추궁하는 부분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조시에게 아빠가 누구인지, 문란한 성 생활을 가지는 것 아니냐며 추궁하고 그녀에게 성폭력에 문제제기할 자격이 안 되는 문란한 여성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죠. 또한 회사 측도 한마음 한뜻으로 조시를 ‘원래 헤픈 여자’로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합니다. (후에 드러나길 조시는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강간당한 것이었습니다만.)
이러한 모든 장면들은 현재와 오버랩 되면서 몇 십 년의 시간이 지나고 여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발전해도 여전히 견고한 ‘성폭력의 프레임’을 보여줍니다. 작년만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성폭력 사건이 여러 건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K대 의대 성폭력사건’을 보면, “왜 여자 혼자 남자 셋과 엠티를 가느냐.”, “그렇게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이 문제”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등장했고, 소송 초기 가해자 측에서는 “피해자는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는 골자의 설문을 돌려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회에 안착하고 싶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웃어넘길 것, 무뎌질 것, 강해질 것, 그리고 빌미를 주지 말 것과 같은 말들은 여성들에게 익숙한 주문입니다. 더불어 이 영화를 보다보면 조시가 (자신을 때리는) 남편으로부터 독립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엄마들의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참, 여전하죠?
<North country>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도.
이 정도면 1984년의 사건을 2000년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보여준 감독의 의도를 조금은 더 알 것 같다고 말해도 될까요? 모든 픽션에 비유와 상징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이 바로 특정하고 구체적인 어떤 것을 예술로서 추상화시키는 단서이기 때문이죠. 다른 시대, 다른 인물의 삶을 통해 시간이 지나 세상이 많이 변해도 생각보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이런 찝찝한 진실을 폭로해버리는 것. 이 영화에 한정시킨다면, ‘North country’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도 존재한다는 것.
+
제가 언젠가 여기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한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Working Girl>(1988)인데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다룬 것으로 유명한 이 영화.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려진 것과는 다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요. 지금도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다음을 위해 참겠습니다.
어쨌든 꼭 하고 싶은 한마디, 아무리 야한 옷을 입었어도, 아무리 술에 많이 취했어도 그것이 그녀를 성폭행할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여성의 삶이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싸워온 여성들의 역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냠냠!
**********************************************************************************************BY 샤오롱바오
대책 없이 사는 만년 졸업반. 영화와 미술, 그리고 춤에 빠져있다.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기준은 매우 명확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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