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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박스석의 이상한 시선들. 그것은 르누아르와 카삿의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삐아오의 들리지 않는 음악」, [Op.7] 오페라 이야기 No.1 ‘이상한 시선들’ 참고) 187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안나 카레니나>(조 라이트 감독)에는 오페라 무대를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배경은 오페라라는 작품 자체보다 등장인물들이 오페라 극장, 특히 박스석에 앉아있다는 전제였던 것 같다. 그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나 오페라의 내용이 묘사되는 대신, 박스석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이 목격되며, 소문이 퍼져나가는 진원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림과 영화가 박스석에 대해 보여주는 바를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오페라 박스석의 목적이 공연의 온전한 감상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아니였다. 그 곳은 ‘과시’의 공간이었다. 자신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한 장소, 즉 ‘To See, or To Be Seen’이 공간의 진짜 목적이자 기능이었다. 결국 박스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무대는 또 다른 박스석이었던 것이다.
박스석의 첫 번째이자 주된 목적은 바로 연인 탐색이었다. 이 때 다른 사람을 ‘보는’ 주체는 남성이고, ‘보여지는’ 주체는 여성이었다. 즉 귀족의 딸이 하는 모든 행동은 다른 신사나 라이벌관계에 있는 다른 여성, 신붓감을 찾는 아버지들의 관심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앞에서 제시된 그림들을 해석할 수 있다. 르누아르 그림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양한 장신구를 하고는 정숙한 자태로 앉아있는 여성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을 의식하며 앉아 있다. 그 뒤에 보이는 남성은 다른 곳을 당당하게 두리번거리며 ‘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카삿의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역시 화려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이 무대와 아예 어긋나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남성은 아주 노골적으로 무대를 등지고 목을 쭉 빼서 여성을 보고 있다.
여성들이 보여지는 장소로서 박스석은 한편으로는 귀족들의 관음증적인 기질은 충족시켜주는 부차적인 박스성의 기능과 연관되기도 한다. 측면 높게 달려있는 박스석의 위치적인 특성 상 무대 뒤에서 출연을 대기하며 준비하는 무용수들을 훔쳐보기에도 적격이었던 것이다. 박스석의 귀족들은 공연 중간중간에 옷을 갈아입거나 동작을 연습하는 무용수들을 훔쳐보는 것도 하나의 소일거리로 삼았다. 여성은 비록 박스석에 있는, 보여지기를 원하는 여성이 아니지만 박스석에 있는 남성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즉, 박스석에 있는 남성의 시선은 박스석과 무대, 또 다른 객석 모두를 ‘To See’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비록 주로 ‘보여지는’ 주체였지만 여성도 다른 사람을 어느정도 거리낌없이 볼 수 있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파리에서 여성이 모르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생각되었다. 정숙한 여성이라면 남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극장이나 백화점과 같이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소비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점점 커졌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의 옷차림이나 행동을 오페라 글래스를 통해서 거리낌없이 훔쳐볼 수 있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페라 박스석에서의 이상한 시선은 남성의 시선으로의 여성의 종속과, 여성의 시선의 주체성이라는 두 가지 함의를 모두 담고 있다.
이렇게 과시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박스석은 최신 유행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의 전시장이 되었다. 이것은 이내 박스석의 두 번째 목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여성들은 일상적인 복장으로 오페라 극장에 가는 일은 없었다. 노출이 심한 드레스는 물론이었고 드레스를 한층 더 화려하게 장식하는 브롯지와 귀걸이, 목걸이, 커다란 모자, 하얀 장갑과 그 손에 들 부채, 오페라 글래스와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외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신경을 써야 했다. 메리 카삿의 또 다른 그림 <Woman with a Pearl Necklace in a Loge>는 당시 박스석에 있던 여성의 화려한 모습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박스석은 연인탐색전과 최신 유행의 선도장의 기능 이외에 밀담이 오가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능은 공연을 할 때 지금의 극장 분위기와 달리 어느정도의 소음과 잡음이 허용되었기에 가능한 기능이었다.(「삐아오의 들리지 않는 음악」, [Op.4] ‘집중적 청취에 대한 낯선 질문’ 참고)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주변이 트여있는 일반 객석과 달리, 칸이 나누어져있어서 사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박스석에서 잡담을 나누는 것은 일종의 특혜였다. 잡담의 주제는 보통 전쟁이나 종교에 대한 밀담이나 궁정에서 이루어지도 있는 사건 등 정치적인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오페라 극장의 박스석은 그 사회의 상류 특권층으로 행세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박스석을 사용하는 주체는 귀족이나 상류층이었고, 그들은 우리가 매 공연마다 티켓을 사서 입장하듯이 박스석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가문 대대로 박스석을 소유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요즘의 리조트 회원권과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할 액수의 돈으로 박스석을 소유해두고 공연이 있을 때 마다 그 곳에서 관람을 한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지 않는 휴가철에는 소유권을 넘기고 떠나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박스석에 대한 소유가 상류층에 대한 조건으로 보는 관습이 점점 왜곡되면서 소유를 많이 하는 것에 가문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의미를 부여하기 이르렀다. 그 결과 한 가문이 100석 이상의 박스석을 독점하기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19세기 미국의 유명 가문이었던 밴더빌트 가문이 오페라 하우스 건축비를 내는 대가로 박스석 122개를 확보한 사례가 귀족들간의 과열된 경쟁의식을 잘 보여준다.
박스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였으며 그곳에 앉아있는 여성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또 다른 프리마돈나가 되었다. 그 곳에 앉은 모든 사람들은 최신 유행을 몸에 걸친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밀담을 나누는 사람들은 정치적 주체가 되기도 했다. 또는 박스석은 그 곳에 앉은 사람이 상류층이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하나의 표식이 되기도 했다. 즉 박스석은 ‘돈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잘 보기 위해 앉는 공간’ 이상으로 훨씬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박스석은 남들의 시선을 받는, 그리고 받기 위한 공적인 장소이자, 그 속에서 밀담이 오가는 사적인 장소였다. 결국 박스석은 공연 관람이 목적이 아니라 귀족들의 과시와 허세로 가득 차 있어서 역설적이게도 텅 비어있는 ‘상자(Box)’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림 1.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2.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 (출처 : 구글 이미지)
* 그림 3. Mary Cassatt, <Woman with a Pearl Necklace in a Loge>, 1879.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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