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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They worked
They were always on time
They were never late
They never spoke back
when they were insulted
They worked
They never took days off
that were not on the calendar
They never went on strike
without permission
They worked
ten days a week
and were only paid for five
They worked
They worked
They worked
and they died
They died broke
They died owing
They died never knowing
what the front entrance
of the first national city bank looks like
[후략]
- Pedro Pietri, Puerto Rican Obituary
푸에르토리코 계 미국인 이민자였던 시인 Pedro Pietri의 Puerto Rican Obituary의 1절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뉴욕에 건너와 불법 이주민 신세로 전락해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사라져간 이름 모를 이민자들에게 바친 시이지요. 저는 이주민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볼 때면 항상 이 시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when they were insulted와 without permission인데, 앞 행과 다음 행 사이에서 중의적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 절묘하지요.
페드로 피에뜨리는 다른 많은 이민자 출신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에 ‘재발견’된 시인입니다.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이민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주류 문화 속으로 포섭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비로소 미국적 가치를 획득한 경우입니다. 이민자 게토를 형성했던 뉴욕의 많은 지역들이 ‘할렘 르네상스’니 ‘스패니쉬 할렘’이니 하는 표현들과 함께 주요 관광지로 부상한 것처럼 말이에요. 페드로 피에뜨리도 푸에르토리코, 쿠바, 멕시코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스패니쉬 할렘’의 문화적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각종 벽화와 기념물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그의 시는 몹시도 비장하고 혁명적인 에너지로 넘치지만, 벽화로 남겨진 페드로 피에뜨리의 얼굴은 온화한 아이콘이 되어 있어요. 또 다른 중남미의 혁명가였던 체게바라가 그렇듯이 말이에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뉴욕으로 건너온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헐리웃 단골 소재가 되어버렸지요. 오늘 소개하게 된 애니메이션도 어쩌면 진부한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의 재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48년 쿠바의 하바나, 야망에 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는 어느 날 밤 클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 리타를 만납니다. 젊음과 재능으로 빛나는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지지만 열정과 욕망, 질투와 오해가 뒤엉키며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하죠. 다시 기회의 땅 뉴욕에 발 딛게 된 치코는 스타로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리타와 재회하는데... 하바나에서 뉴욕, 그리고 파리, 할리우드, 라스베가스까지. 사랑과 꿈을 좇는 그들의 뜨거운 여정을 다룬 에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입니다.
줄거리는 쿠바 판 <드림걸즈>의 변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명 가수의 성공과 고뇌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전개는 예상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결말도 정석적인 편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관객은 꿈같은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의 영상미도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 5-60년대 재즈가 풍기는 분위기를 무척이나 잘 구현하고 있어요. 음악만이 아니라 등장 인물의 태도나 복장, 말투, 성격마저 5-60년대 특유의 화려하고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화려하고 꿈같은 분위기 속에서 언뜻 이민자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뉴욕에 건너간 치코는 하바나의 전설적인 드러머로 뉴욕에서 성공한 줄로만 알았던 차노를 만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어느 허름한 지하 공연장에서 연주할 뿐이었습니다. 마약과 술에 찌든 차노는 뉴욕에서의 차별이 하바나보다 심하다고, 백인 전용 상점들뿐이며 버스에서조차 2등칸에 타야 한다고 푸념합니다. 뉴욕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에요. 차코와 리타의 사랑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사건도 이민자들이 항상 겪게 되는 바로 그 문제고 말이에요. 게다가 차코와 리타의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은 전적으로 미국인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치 운명처럼 둘의 삶을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은 부유한 백인들이죠. 실제 이민자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극적인 사랑 이야기와 영상미, 아름다운 음악에 담긴 이민자들의 고난했던 삶.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아마 페드로 피에뜨리의 시도 좀 더 잘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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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히 살아서 김근근인 역사/정치학도.
작품을 감상할 때면 주제보다도 시대와 맥락에 과도한 흥미를 느끼는 변태.
치킨과 두부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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