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향香에 관하여.

아니 향饗에 관하여.


 3월1일에 우리는 태극기 대신 기타를 걸었다. 멤버들과 ‘대한독립만세’ 대신 우리의 음악을 외쳤다. 관객은 쉽게 모였들었다가는 쉽게 쓸려나갔다. 그들은 무대 위의 나를 봤다. 나는 관객석의 그들이 보이질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노래를 불렀고, 오로지 ‘나’자신을 위한 이기주의의 찬가도 불렀다. 다른 멤버가 써준 가사를 나의 노래에 얹어보기도 했다.

 냄새가 났다. 거기서는 음악 냄새 비슷한 향이 났다.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그 일곱번째 음악.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 Sade




 Lyrics
-
You came along when I needed a saviour
Someone to pull me through somehow
내가 구세주를 필요로 할 때, 너는 나와 함께 해주었고,
그런 너는 나를 어떻게든 살아가게 해주었어.
I've been torn apart so many times
나는 이미 여러번 산산조각났어.
I've been hurt so many times before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쳤어
So I'm counting on you now
그래서 너에게 기대고 있는 거야.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쉈으니.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숴버렸으니까.

Here I am
내가 여기있어.
So don't leave me stranded
On the end of a line
Hanging on the edge of a lie
그러니까 나를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그 거짓말의 끝을 겨우 붙들고 있는 채로
남겨두지마. 
I've been torn apart so many times
나는 이미 여러번 산산조각났어.
I've been hurt so many times before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다쳤어.
So be careful and be kind
그러니까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대해줘.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쉈으니.
If someone has to lose, I don't want to play
누군가는 져야만 하는 게임은, 나는 하고 싶지가 않아.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
이미 누군가 나의 마음을 부숴버렸으니까.
No, no I can't go there again
아니, 아니 나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

-



 우리의 냄새는 2009년의 어떤 여름날로부터 발원한다. 우리 셋은 젊었고, 사실 젊다기에는 어렸고, 어린티를 내지못해 안달이 났다. 우리는 음악을 좋아했다. 우리는 담배와 여자를 좋아하고 담배와 여자가 가득한 클럽을 좋아할 뿐만아니라 음악을 좋아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깟 치기어린 명목으로, 2009의 여름날에 우리는 향을 피웠다. ‘음악’을 하겠다며 제사상에 맥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올려놓고는 향을 피웠다. 

 관객들이 쉽게 모였다가, 쉽게 집중하고는 쉽게 뒤돌아서듯이- 수많은 멤버들이 우리를 거쳐갔다. 하나 같이 음악을 좋아했지만, 하나같이 뒤돌아 섰다. 그들은 대학원과, 일터로, 그리고 외국으로 갔다. 그들은 모두가 음악을 좋아했지만, 하나같이 음악 냄새를 맡지 못했다. 때로는 냄새를 맡고도 뒤돌아섰다. 나는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우리를 혹은 나를 떠나간 멤버들을 욕하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우리 셋이 있다면 괜찮았다. 그때마다 우리 셋은 도원결의라도하듯 뜻을 모으곤 했다. 맥주를 쏟아가며 음악을 계속하리라고 유세를 떨었다.



 군대를 기점으로 셋 중 하나가 우리를 뒤돌아섰다. 병역의 의무도 힘겨웠지만, 병역의 의무보다 힘겨운 것은 그것이 나에게서 음악을 앗아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다. 2년의 기간이 우리 향을 꺼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고 세 개 중 하나의 향은 더 이상 타지 않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향을 눌러 끄고는 나에게 몇 마디를 남겼다. 그는 회계사가 되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욕하지 않았다.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제대를 하고, 이십대 중반이라는 숫자가 눈앞에 명확해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를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들을 욕하고 원망할 겨를이 없었다. 내 눈 앞의 향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것에도 나는 급급했다.

 우리 둘은 새로운 멤버들을 모집하며 계속 향을 피웠다. 바람이 세게도 불었다. 향이 꺼지기 전에 부러져서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이 바람이 세서, 나는 옷깃으로 향을 감쌌다. 위태로운 시간들이었다. 거기서는 위태로운 향이 났다. 우리는 위태로운 녹음을 하고, 합주를 하고, 공연을 했다. 예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빈도지만, 가끔은 술도 마셨다. 주위에선 끊임없이 나의 장래계획을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는 음악을 할 거라 말했다. 그들은 우리집이 부자인 줄 알았다. 나를 돈 많은 집에서 걱정없이 기타나 퉁기는 베짱이로 여길 것이었다. 

 대한독립을 외치는 3월1일이 아닌, 우리의 향을 피울 3월1일을 위해 멤버들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새로운 곡을 쓰고,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나는 그로부터 한 달전 쯤 담배를 끊었다. 멤버들은 언제 필 것이냐며 나를 조롱했지만, 한 달동안 단 한개피도 나는 피우지를 않았다. 나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오로지 향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랑스런 담배를 끊고 그의 절친한 친구들도 함께 끊었다.

 나는 이제 어리기보다는 젊었다. 덕분에, 나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걱정했다. 돈과, 미래라는 이름의 돈과, 차를 사기 위한 적금과, 월세와, 결혼을 위한 돈과, 담배를 피지 않을 때 생기는 돈과, 새로운 기타를 사기 위한 돈과, 데이트를 위한 돈과 돈과 돈과, 4년간 바꾸지 않은 꼴통 핸드폰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4만원 이내로 찍혀나오는 통신요금에 대해서 끊임없이 걱정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걱정들에 나는 여러번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로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릴지언정 향을 끈적은 없었다. 많은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뜸해지고, 몇 명의 여자가 나를 떠나갈 동안에도 향을 끈적은 없었다. 눈물을 기화시켜 그로부터 분해해낸 산소는 향을 태우기 위해 사용했다. 나의 음악적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을 비롯한 나의 모든 탤런트에 대해 수없이 회의하고, 그 한계에 대해 수없이 인정하며 신에게 처절히 굴복했지만서도, 나는 결코 향을 끄지는 않았다.

 2014년 3월1일에 우리는 향을 피웠다.

 무대에 오르자 핀 조명과 프로젝터로 나는 눈이 멀었다. 관객들은 우리를 보았지만 나는 눈이 멀어서는 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향을 맡았다. 냄새가 났다. 눈이 멀어서인지, 그날따라 농밀한 향이 나를 어지럽혔다.
 향이 다 타서 없어질지라도, 그 순간이 전부인 채로 우리는 향을 피웠다. 3월2일에는 또 다른 빙하기가 오든 헬리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든 알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연주가 아닌 음악을 했다. 내가 말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우리의 음악은 제법이나 쓸만했다. 객관을 가장한 주관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객관적인 주관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음악에서는 냄새가 났다. 향이 났다.


 공연으로 번 돈에서 공연장의 계약금을 제하고 나니, 우리 손에 몇 푼이 만져졌다. 그 날 술값으로 깨끗이 사라져갈 돈이었다. 술을 마신 후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앱솔루트나 스미노프를 열기에는 부족한 액수였다. 그래도 우리는 사치를 부렸다. 맥주도 마시고 칵테일도 마셨다. 포장마차도 아닌 번듯한 실내술집에서 마셨다. 술을 마시는 중에도 음악이 퍼뜨린 향이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될 즈음, 밴드를 결성했던 나머지 한 명이 숨을 깊이 들이 쉰다. 가벼운 웃음도 멈추고는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오늘부로 밴드를 그만두겠다는 날숨과 함게, 그는 자신의 향을 껐다. 자신은 더 이상 향을 태우지 않을 것이며, 이제 세 개의 향 중에서 내 것만 남을 것임을 의미하는 단어의 조합이 내 코끝을 맴돌았다. 그의 향이 끝을 향해 타들어가면서, 그 냄새는 숨을 쉴수 없을만큼 공격적으로 나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나에게 담배를 건냈다. 신께 용서를 구하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로 향을 감추지 않으면 내가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밴드를 나가며 말했다.
우리 음악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향이 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다시 한 개피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향이 났다. 거기서는 음악 냄새가 났다.


<Lovers Rock, 2000> Album cover




 어지러웠다. 좀 어지럽고 나니 개강이었다. 개강이란 것을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국 셋 중에 나만 남았구나 생각하니 지독하게 아찔했다. 나는 아찔한 채로 2호선을 탔다. 조금 더 아찔하고 나서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서 교정을 걷자니 나는 두려웠다. 신입생을 비롯한 나보다 좀 더 어린 생명체들이 내뿜어대는 설렘이 나는 두려웠다. 코 끝에서 향이 났다. 나는 눈물이 나려했지만 담배를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예전보다 평균신장이 커진 어린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고는 다시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신에게 기도하다가도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43-1동 303호로 가는 길에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음 시간까지 자기소개서를 쓰라는 강의자의 말 중에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기소개서를 써보기 위해, 노트북의 전원버튼을 누르는 중에도 나는 그 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향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다.




보다 정확한 번역에 도움을 주신 이지훈, Seungjae Samuel Park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