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비켜줄게'.

 



 진짜로 해볼게.




아램디의 <<지속 가능한 음악>> 그 열번 째 비키기.


3.0 전화기

울린다. 전화기가 울려서 -


1. 문열고

나간다. 나는 나간다. 지금 바로 나간다.


왜냐하면 짐을 하나도 안 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타도 챙기지 않았고,

내 옷장에서 가장 비싼 청바지도 입지 않은 채이기때문이다.

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부드러운 손목스냅으로 우리 집 문을 열고 나가는 중이다.

이미,

벌써,

나는 나간다.


짐을 하나도 안싸서 나는 지금 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홀연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

내 옷장에서 가장 비싼 청바지는 팔아버리고, 저기 '중고나라'에 헐값에 팔아 버렸기에 비로소

나는 나간다.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넣고, 기타를 메고, 가장 비싼 청바지를 입은 채였다면 나는 안 나간다. 내가 안다.

그런 채라면 절대로 안 나갈 거다. 절대로 안 나갈 거라서, 절대로 못 나간다.

나는 안다.

어제도, 2년전의 오늘에도 나는 안나갔다. 그래서-

나간다. 이대로.



2. 똑바로

걷는다. 수 년간 흐트러진 나의 몸을 가다듬어서는.

팔은 자연스럽게 앞뒤로

벌어진 신발코는 모으고

굽혀진 허리를 곧추 세우고

턱은 당겨서 시선은 정면을 바라본다.

사실 내 눈앞에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테다. 눈 앞에 높은 빌딩과, 다려진 양복쟁이들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하늘을 보는 중이다.

'올려다보지 않는' 하늘을 보는 중이다.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존재하는 하늘과, 지금 내 눈앞에 그리고

어디에나 펼쳐진 하늘의 청쾌한 공기를 들이 마시는 중이다.

내가 똑바로 걸어나갈 때만, 나의 귓바퀴에 들려오는 음악을

감상하려는 중이다.



3. 전화기가

울린다. 울리는 전화기를 들어 발신번호를 확인하고는

흠칫,

빨간색 버튼에 습관적으로 손이 간다. 얼굴까지 빨개져서

부끄러워진 나는 / 하지만,

하지만,

자세를 고쳐먹기로 한다.

짝다리를 풀고, 허리를 곧추 세우면 아까보다는 조금 낫다.

턱까지 끌어당기면 아까보다는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다.

정면 속에서, 초고층 높은 빌딩보다 높은 곳의

그래서 겸허하기만 한 향기를 맡으려 한다면,

나는 두 눈 딱감고

초록색버튼을

누를 수가 있다.



전화기는 울리고 있다. 항상 울리고 있었다. 한 순간도, 내가 초록색버튼을 누르고

바알갛게 상기된 나의 오른쪽 뺨에 전화기를 갖다 대는 순간에도 전화기는 울리고 있었다.

거기서는 절대로 비켜줄 수 없다는 투의 전화벨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의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하나의 의지가 계속 울려댔다.

한 발짝도 비켜설 수 없다는 전화벨은

단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

한국전력에서도 차단할 수 없는 전류로 나를 구속한다.


그래서



내가 비켜줄게.

반드시

나에게서, 원래의 내가 발디딘 자리로부터 비켜줄게.

혼자는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난


때묻은 손으로 힘겹게 쌓아온 나의 몇개의 모래성으로부터

물러설게.

그 모래성들을 파도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구매한 방파제와

악으로 심어간 방풍림으로부터,

내가 비켜줄게.

앞으로 세우려고 준비했던, 창대한 모래성의 설계도도

해운대에서 가져온 13톤의 고운모래도

모른 체

보내줄게.

진짜로 해볼게.



지금 비켜줄게.

반드시.


전화벨을 위하여.